섬세한 아름다움의 전주한옥마을 여행기
오래된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즐거움으로 발끝부터 가벼워진다. 같이 가기로 여행을 모의한 친구들은 몇 년 전 설계 강의 때 가까웠던 제자들이다. 졸업을 하고 일년에 한 두 번씩 만나면서 학교 때 갔었던 건축답사에 대한 일들을 추억거리로 나누었었다. 지난 해 모임에서 가을에 학교 때 갔던 건축답사를 추억하며 다시 가면 재미있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지만 아직 사회생활 초년병들이라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처럼 마음은 굴뚝 같고 생각은 쉽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실행과 여럿의 일정을 조정해서 실천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의 답사 꿈꾸기는 한번의 유산을 겪고 다시 한번 모의되었다. 이번에는 매사 열심인 막내의 추진력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그렇다고 야근과 철야 작업으로 각자 설계사무소에서 일정에 매여있는 각자의 상황에서 현실적인 실행은 쉽지 않았다. 어째든 어렵게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센추럴시티 터미널에서 전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일상을 벗어나 그저 여행의 목적 외에는 어떤 목적 없이 낯 선 곳으로 떠났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한 것이 같은 장소나 같은 상황이어도 무슨 목적으로 그 일을 대하느냐에 따라 마음에 있어서 여유의 정도와 쾌, 불쾌의 느낌이 달라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버스 안의 우리는 그 여행의 설레임과 모처럼 서울의 일상을 벋어난다는 흐뭇함으로 하나의 마음이었다.
설계 사무소에서의 즐겁지만 일정의 압박감,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공동작업의 어려움, 선배 혹은 실장의 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한 불만과 동의, 밝지만은 않아 보이는 건축의 미래, 내년 쯤에 대학원을 진학해서 다시 재충전의 자신의 건축 인생을 위한 투자에 대한 계획 등등. 까만 차창을 바라보면서 우등고속버스의 넓은 좌석의 편한하게 기대고서도 여전히 건축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일상을 벗어나서 이렇게 밤 속을 낯 선 도시로 가고 있다. 일상의 휴식과 낯선 즐거움을 위해서.
전주에 내렸을 때는 11시가 넘고, 거리의 가게 들의 불은 생각 보다 많이 꺼져있었지만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전주 시내의 거리는 매일 보는 서울의 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약간의 실망을 느끼면서 숙소에 도착했다. 낯선 주인과 만남, 잠을 자기 위한 낯선 장소를 받아 들여야 하는 잠깐의 긴장이 지나고 아주머니의 조심스러움과 친절에 조금은 안심하면서 나름대로 공부한 전주의 밤문화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 검색에 의하면 막걸리거리가 요즘 전주의 대세라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콜택시를 불러 주었다. 서신동이나 삼천동이 이냐의 논란은 늦은 시간에 장사를 하는 곳이 어디냐는 문제가 되어서 택시 기사 아저씨의 조언대로 삼천동으로 향했다.나름대로 선택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12시가 다된 시간에 가게들은 손님을 본체만체 가게 정리하기만 급했다. 몇 곳을 쫓겨나고 조금은 설렁한 수목이라는 가게에 들었다. 아직 남아있는 손님 덕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거리식의 음식문화에 접한다. 나름대로 푸짐한 안주에 처음에는 주인아주머니의 추천대로 가라 안친 맑은 막걸리(아마 예전에는 약주라고 칭했을 것)를 작은 주전자에 내왔다, 그런대로 달달한 맛에 괜찮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걸리는 역시 탁주라야 제 맛인 것. 후반에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라 칭하지만) 반마다 비치했던 거대한 물주전자보다는 작지만 조금은 부담되는 크기의 대형 주전자로 열심히 막걸리를 즐기고…
늦은 아침 기상 시간 덕에 만나보지도 못한 낯선 손님들은 벌써 채비를 마치고 민박집을 다 떠난 다음이었다. 조금은 한가하게 주인 아주머니의 솜씨인지 수집취미인지 모르지만 방마다 가득한 십자수 걸개와 베개 장식, 이불보를 감상한다. 놋그릇, 물래, 낡은 장기판, 통목으로 된 고재 탁자 등이 조그마한 분재 화분 들과 와 매화 꺾꽂이와 어울리게 장식되어 있다. 문화적인 전주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약간은 인테리어를 약간은 어설퍼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경박스러운 쪽 보다는 애쓴 정성과 깔끔한 품격 쪽으로 점수를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당도 나름대로 가꾼 흔적의 노력이 보인다. 한쪽에 장식에 가까운 갖가지 크기의 도기 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마당에 길에서 현관에 이르도록 징검다리 식으로 맷돌 들을 연이어 놓았다.
주인 부부의 친절을 뒤로하고 전주 한옥마을을 두른다. 아침은 유명하다는 왱이집에서 유일한 메뉴인 전주식해장국을 먹었다. 따로 주는 쌍알의 달걀을 신기해 하면서 얼큰하고 뜨끈 뜨끈한 콩나물 해장국은 밤 늦은 술행각에 시달린 위장을 달래는데 최상의 것이었다. 왜이 해장국집 앞에 바로 만나는 현대식 절 선각사 건물은 타일 위에 오랜 세월 동안 뿜칠로 개수되었지만 초기 모더니즘에 심취한 어떤 건축가의 열정을 볼 수 있다. 중앙시장 거리에는 올해 1일 초에 했던 행사의 프랑카드가 아직 붙어있고 그 전시회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도시공공디자인적인 그래픽과 오브제들이 곳 곳의 건물에 남아있어 조금은 거칠지만 문화적 시각의 젊은 시도들이 즐겁게 느껴진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다른 도시보다 더 성공적인 도시 활성화 방향의 사업인 듯하다. 한옥기와에 대한 극단적인 강박관념 없이 기존 목구조와 나름대로 어울리는 조금씩의 개량기와의 잔재와 보수 시도 그리고 작은 단위의 건물 구성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이루어지는 점진적인 정비사업이 다행스럽다. 제발 도시의 다른 부분도 그런 모습이었으면 기대한다.
하루 사이에 따뜻한 봄볓으로 변한 해가 반갑다. 부드러워진 바람과 기온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소박하지만 문화적 안목으로 다듬어진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는 유독 자동차가 많아 보이지만 그렇게 서두르거나 아옹다옹하는 분쟁 없이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도시는 많은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들이 욕망의 시간을 서로 맞지 않으면서 균형을 찾기가 쉽지않다. 길은 사람과 우마를 위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늘어난 자동차의 숫자와 빈도에 허덕인다. 사람들은 산업의 발전과 문명의 발달로 이해된 새로운 운송기기인 자동차에 대해서 문제를 선도하는 일차적인 가치를 주었다. 도시의 모든 것은 자동차를 고려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건널목이 생기고 가로등이 생기고, 육교가 생긴다. 자동차가 막히는 문제는 도시의 심각한 문제가 된다. 모든 도시가 어떤 시기 이후에 그러한 도시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겪는다. 서울은 얼마나 많은 육교와 고가도로를 만들었다가 이제는 부수고 있는지.
전동성당은 경기전과 대각점에 위치한다. 섬세하게 구성된 디테일과 거대한 볼륨의 유럽식 전통건축이 얼마나 늠늠해 보일 수 있는가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프랑스인 윤사물(Fr. Baudounet, Francois Xavier1858-1915))이라는 초대 주임 신부가 건축했다는 성당은 붉은 벽돌과 검은 전돌을 섞어서 자연스러운 색조를 만들어 낸다. 벽돌 건축은 보는 이에게 건설과정에서 사람의 노동과 그에 바쳐진 시간을 느끼게 한다. 노역에 바쳐진 몸과 마음은 무슨 생각으로 그것을 만들고 있었을까. 일상을 위한 돈과 먹을 것을 위해서 품을 팔았을 수도 있고, 조금은 신부의 강론에 감동 되어서 임금 삯도 삯이지만 하느님을 위한 거룩한 장소를 건립하는 사업에 동참하는 사명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신념이 이런 위대한 건물을 가능하게 했으리라는 추측된다. 그것을 문화라는 고상한 포장으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도시의 기념물이라고 품격을 두어서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가슴 안에 성취하고 만들어내는 노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노력하고 극복하는 성실함을 추구하는 긍정의 마음이 있는 것이리라. 물론 그것이 누구를 위한 행위이고,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가에 따라 어려가지 판단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보는 자연의 미학이 우리 사람에게 내재해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언젠가 전주 여행 중에 들었던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경기전을 말해주면서 전주는 풍수상으로 우리나라를 영도(?)하는 지도자가 태어난다는 것이고 맨 처음이 이조 태조 이성계이고 김일성은 본관이 전주이고(자료에는 전주김씨 12대손) 이승만 전 대통령도 본관이 전주라는 것이다. 사실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선 오백을 이끈 이태조의 출생지인 것은 분명하고, 그것의 문화의 도시인 전주에 또 하나의 자긍심인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몇 년전과 달리 경기전과 그 주변은 한옥마을의 성공과 더불어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예전의 한국 찻집과 몇몇의 박물관 정도와 골동품 전시 경매장과 나름대로 색깔을 가지고 있는 토속 상품의 판매점들, 품격 있는 공예전람회를 겸하면서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정도로 예술성과 정성이 들어간 섬유작품, 한지 공예품, 도자기류 등 등이 볼거리를 풍부하게 해준다.
한옥들은 일부는 판매로 내놓은 집도 있고 일부는 헐어져서 주차장으로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그곳에 살림 집으로 살아가는 곳과 가게로 전환된 곳이 섞어서 그야말로 살아있는 한옥마을을 구성하고 있어 보인다. 단순히 민박촌이나 체험관으로써가 아니라 도시의 일부로서 변형과 개량을 수용하면서도 건축적인 품격과 이름다움을 유지하는 진정한 도시마을을 보여준다. 빨간 벽돌로 일부 변한 한옥의 가로벽은 그런대로 목조의 처마와 간신히 어울리고, 시멘트 담장은 적당한 구획으로 나누어져서 몰탈뿌리기로 민민한 미장벽에 질감을 만든다. 한옥의 기둥 사이는 예쁘게 모양낸 일본풍으로 개량된 사각형모양으로 살로 나뉘어진 유리 분합문이 끼워져 있다. 도시의 요소들은 기능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형태이지만 도시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시각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사람의 시각의 미적인 요구는 거대의 형태적인 미감과 섬세한 디데일을 즐기는 세부적 미감을 동시에 요구한다. 상세가 없는 거대함, 성의가 없는 통 큰 구성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제인오스틴의 연애소설은 그냥 신데렐라 주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류 작가의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과 인간의 한계, 꿈꾸는 일의 아름다움, 무엇보다 그것을 읽어내는 확대경과 같은 디테일이 전체 이야기와 혼성 구성되었기에 생명력 있는 아름다운 소설인 것이다. 도시의 아름다움도 개별적인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벽과 창과 출입구, 창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 공간의 모습, 투명하게 처리된 창문의 나누기, 외벽의 색깔과 재료, 지붕 처마의 섬세한 처마구성, 그것에 스며있는 목수의 솜씨 등이 건축물의 덩어리와 높이, 옆 건물과 조화 혹은 대비, 벽체를 뻗어가는 시선의 깊이 등의 도시 공간적인 구성과 섞이면서 입체감과 섬세함의 미적 구성을 만들어 낼 때, 더욱 도시적인 생명감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골목을 더듬어 여기 저기를 도는데, 떡갈비 굽는 냄새가 입가에 침을 고이게 하고, 그 옆에는 나즈막 하지만 세세한 목조 디데일과 꽤 스케일이 있는 목재를 사용해서 다시 지은 듯 보이는 음식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신뱅이라는 집인데 아침에 분이라는 우리가 잤던 민박 집 주인이 추천했던 음식점이었다. 유리와 나무를 써서 한옥과 잘 어울리도록 입구도 구성하고 제법 그럴 듯했다. 옛
날 전주에 왔을 때를 더듬어서 풍남문을 찾았다. 가림망을 쳐 놓고 보수 공사 중이었다. 수원의 화성에 비하면 조금은 초라하고 형태적인 구성이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잘 석축된 성곽은 여전히 견고한 위세를 가지고 있었다. 경기전 주변에 관광객으로 붐비는 살아있는 모습에 비하면 풍남문 주변의 원형 로터리 상권은 한물간 시골 읍내 풍경이 연상될 정도로 낡고 한산했다. 철지난 악세서리 가게, 빛바랜 모습으로 나와 앉아 있는 가방가게 앞에 여행가방들, 차도인지 주차장인지 구분되지 않는 로터리 도로길, 왠지 가슴이 아프다. 객사와 풍남문은 전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적인 유구인데 도로 위주의 도시의 발달로 찻길로 단절되고 더군다나 상권이 빠져나가면서 보기에도 측은한 애물단지처럼 방치된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다. 보수 공사의 망을 벋고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는 위풍 당당하게 도시화, 상업화에 밀리지 않는 당당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더불어 주변이 그를 찾는 많은 사람들로, 그와 더불어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관심의 중심으로 살아났으면 좋겠다.
다시 경기전 앞으로 와서 경기전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찻집을 찾았다. 일본의 교토와 전주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주는 전라북도의 중심지로서 역사적인 분위기의 고도이다. 도시구조가 아직도 많이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남아있고 이제 그것들을 중심으로 문화적인 관심이 전통적인 역사와 미래의 삶을 도시 안에서 새롭게 엮어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햇볏과 바람, 사람들의 이야기들, 기왓자락과 서깨래 촘촘한 처마, 가게를 구성하는 서정적 파사드들의 연속, 하나의 방향으로 무조건 몰아가지 않는 느림과 작은 단위의 새로운 구성들, 같이 여행하는 좋은 친구들, 그 때의 추억에서 앞으로의 만남을 이어갈 시작을 이번 전주 여행에서 발견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제 밤에 부족한 잠 덕에 불편하지 않게 이야기하다가 잠에 빠졌다. 무궁화호를 타고 왔지만 요사이 한국형 고속철의 사고 소식이며, 토요일 오후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의 정체에 비하면 산뜻한 귀경일 것이다.
일과 일탈, 일상과 여행, 진지함과 느슨함, 형태구성과 디테일, 딱딱함과 부드러움, 그 안에서 나의 세월과 건축의 시간은 갈 것이다. 그렇지만 몇 개의 흥미로운 생각과 몇 개의 좋은 작품은 주변의 우리에게 즐거움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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