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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낫 고치기

지난번에 마당일을 하다가 낫이 부러졌다. 처음 겪는 일이다. 옛날 무쇠 낫은 두껍고 숫돌에 갈아 썼다. 요즘 것은 열처리한 쇠를 쓰는 모양이다. 쇠의 강도도 좋고 예리한 날로 잘 가공되어 있다. 그런 것이 조금 굵은 나무를 치다가 박혔고 잡아 빼다가 뚝 부러졌다. 조심스럽게 쓰지 않은 탓이지만 조금 황당한 일이다. 창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한낮 더위에 마당일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창고는 해를 가리는 지붕이 있으니 조금 나은 편이다. 바닥에 버려진 부러진 날을 보니 재생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사물이 수명을 다한다는 것은 쓸모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쓸모는 순전히 인간 위주의 생각이다. 주인을 잘못 만나 한순간에 부러진 저 날은 스스로 비통하지 않을까?. 버려지면 녹 쓸고 삭아서 분자로, 원자로 돌아갈 것이다. 쓸모와 상관없는 자연이 될 것이다. 재생 가능하다면 조금 짧아지겠지만 쓸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나의 일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의 쓸모도 그랬다. 내가 설계하고 전문가의 도움으로 20년전에 지은 집이다. 아버지는 10여년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빈집의 운명은 곧 쇠락하고 삭아버리게 될 것이었다. 무심함과 게으름 때문에 폐가가 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멀지만 동성 친족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어른들 나이의 분들은 다 돌아가셨다. 큰 길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동안 꽤 여러 채가 버려진 채 무너지고 있다. 내버려두면 그런 상태가 될 것이다.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다. 미세방충망으로 교체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서측에 덧댄 데크 차양을 고쳤다. 지붕에 올라가 천창의 썩어가는 이마 널을 해체하고 교체했다. 몇겹으로 덧대 진 벽지를 벗겨내고 퍼티 작업 후 페인트를 칠했다. 벽지를 먹고 장롱 속의 옷들을 파먹는 좀벌레를 퇴치 했다. 방과 마루의 바닥재를 교체했다. 사무실을 축소하며 가져온 책꽂이로 소품들을 정리했다. 닳고 찢어진 소파를 보수했다. 돈들이지 말자는 집사람의 권유가 최우선 원칙이었다. 벌레의 침입도 어느정도 잡히고 폐가처럼 보이는 정도는 면한 것 같다. 쓸모가 회복되고 주말마다 내려오는 집이 되었다. 남측으로는 마당이 보인다. 서측으로 난 큰 창으로는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 기찻길과 경춘가도 건너에 새로 생긴 아파트 동네도 보인다. 아직은 대중교통으로 다닐만하다. 10년 혹은 15년 정도, 건강하다면 말이다. 세상에서 나의 쓸모는 점점 더 없어져 간다. 나는 내 안에서 나의 즐거움이라는 쓸모를 발견했다. 내가 나를 알아주는 일이다. 부러진 낫과 이 집, 나의 삶이 겹친다. 쓸모 이전에 사실, 만든 이, 낳은 이가 있었다. 나는 낫을 샀고 나는 태어났고 이집은 지어졌다. 반짝이며 사랑 받기도 했고 여러 일을 하면서 촉망 받기도 했다. 망가지기도 하고 쓸모를 잃어버리기도하고 쇠락하고 늙어 간다. 내가 낫을 다시 주어 작업 대에 올려 놓았다. 이집을 고치고 이글을 쓴다. 한 사물과 한 사람의 연결이 이렇듯 소중한데 사람과 사람의 연결, 소통, 공감은 더 없이 아름답다. 가까이 선풍기를 미풍과 회전으로 맞추어 놓고 부러진, 그리고 고쳐진(?) 낫을 생각한다. 쓸모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