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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네틱스-인용글

이관직 2010. 3. 22. 01:07

안윤호 mindengine@hanmir.com
필자는 아마추어 커널 해커이다. 최근에는 관심의 폭이 조금 넓어져서 인문과학과 생물학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의학과 의공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지난 호에서 마빈 민스키와 인공지능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었다. 필자는 마빈 민스키의 작업과 저술에 대해 오래 전부터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마무리 부분에서 민스키의 영역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과거에도 우리는 같은 주제에 대해 이미 마술이나 고대의 신화에서 무수하게 많은 암시를 받아왔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론은 정신적인 기계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불안한 무의식을 자극하고, 진화론처럼 사람의 신경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필자의 설명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인공지능, 유전자 알고리즘, 나노테크놀로지 같은 기술의 많은 부분의 시동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지 못한 기분이다.

‘사이버네틱스와 사회’
이번 호에는 이른바 사이버네틱스 또는 ‘사이버-’로 시작되는 용어의 아버지뻘이 되는 노버트 위너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필자 정도의 지식으로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용기 차원을 많이 넘어서는 일이다.
사이버네틱스는 현재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노려보는 그 순간부터 사이버네틱스 생활을 시작한다. 웹 서핑을 하거나 채팅하는 일을 사이버 스페이스에 접속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핑을 하기 전에 우리는 휴대폰이나 자동차, 가전제품에 숨어 있는 컴퓨터와 이미 계속 접촉중이었다. 분명히 많은 기계들은 사람들과 어떤 방법을 취하건 메시지 전달이나 교환을 계속하고 있었다. 숨쉬는 일과 마찬가지로 기계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 가득 차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만화와 공상과학소설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던 사이버네틱스 기계는 사이보그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인공장기 연구에 관여했던 기간 이후에 깨달은 사실은 사이보그는 아직은 쉽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가 보편화되고 많은 상품명이 사이버-라는 용어로 시작하는 요즈음 정작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며 누구에 의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원래의 의미대로라면 사이버네틱스는 이른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또는 기계와의 메시지 전달에 관한 학문이다. 사이버네틱스는 1940년대 후반 노버트 위너에 의해 창안됐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전문서적과 『인간활용 - 사이버네틱스와 사회』라는 일반인을 위한 책을 썼으며 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이 두 책의 논지는 비슷하다.
발전이 진행되고 나면 특정과학 분야의 초기 업적들은 상당히 주술적으로 보인다. 이들이 가진 강력한 에너지는 후대에 전파되며 나름대로 박해와 무시를 받다가 주류로 자리를 잡는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PC와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일종의 무시 대상이었다.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 역시 초기에는 영화와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빈도가 더 많았으며 동구권에서는 아예 팝 사이언스(대중과학) 취급을 받았다. 에너지와 영감에 넘치는 초기의 저서들은 광범위하여 마치 미래를 은유적으로 예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좬사이버네틱스와 사회좭 역시 그러한 면에서 매우 모호하고 신비한 책이다. 우리는 노버트 위너의 50여년 전의 예측들을 실현해가면서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이버네틱스와 사회(the Cybernetics and Society)라는 관계를 만족하면서 사람과 기계는 서로 잘 지내고 있다.
『사이버네틱스와 사회』는 국내에서는 인용 빈도가 낮으나 미국에서는 인용 빈도가 높은 서적이다. 어떤 서평에서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술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한다. 기술문명을 중요시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평가일 것이다.

‘인간활용’
‘사이버네틱스와 사회’는 『인간활용』(The Human Use of Human beings)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의 부제이다. 이 책에서 위너는 기계 및 동물에서부터 인간사회를 사이버네틱스의 접근에서 바라본 문명론을, 또 그 문명에 사이버네틱스를 어떻게 적용하는가를 적었다. 이 책은 새로이 나올 디지털 기술과 통신문명에 대한 전망과 비판을 같이 적고 있다(국내에서는 1978년에 전파과학사에서 최동철 교수의 번역으로 『인간활용』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엔트로피 이론으로부터 시작하여 볼즈만과 깁스의 열역학 이론을 적용하는 초기 정보이론으로 운을 떼고 의미론과 메시지에 대한 주제로 넘어간 후 다시 피드백과 디지털 이론을 다루다가 끝에는 문명 비판으로 끝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필자와 같은 초잡식성 독자도 녹초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일의 배경 파악에는 노버트 위너 자신의 배경인 생물학·수리철학·물리학에 대한 지식과 원래 언어학의 천재적인 집안 배경을 포함해 위너가 활동하던 당시의 미국 사회의 발전상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 군수산업 등). 우리가 잘 알고있는 노이만식 컴퓨터의 폰 노이만, ARPA와 실리콘 밸리, 그리고 웹의 전신인 memex의 배느바 부시, 정보이론을 만든 클로드 샤논같은 사람들이 그들이다.
사이버네틱스의 저자인 위너는 라이프니쯔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평가받는 천재이다. 동유럽계 유태인 집안에서 자란 위너는 어린 나이부터 천재교육을 받았다. 9세에 고등학교, 11세에 대학교에, 그리고 14세에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하여 19세에 박사학위를 딴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러셀과 힐버트에게서 수학을 더 배웠다. 졸업 후에 위너의 생애는 별로 순탄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미국사회의 비주류인 유태인에 대한 차별은 심한 편이었다. 그리고 유태인 내부에서조차 러시아계와 독일계가 반목하고 있었다.

통신과 제어를 사회전반으로 확장
위너는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군대에서 고사포의 사정표 계산작업, 신문기자, 백과사전 편집작업, 대학 철학강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했으나 정착은 매우 어려웠다. 실업자 생활을 반복하던 중 25세에 MIT의 수학강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당시 MIT는 일류대학이 아니었으며 기술학교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후 40년간 위너는 MIT에서 물리학, 통신공학, 신경생리학, 컴퓨터 이론 등에 관심을 갖고 확률론을 중심으로 한 수학적 연구에 전념했다. 위너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마침내 사이버네틱스의 원리를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통신이론의 통계적 연구인 것이다.”
실제로는 2차 세계대전 중 대공포 제어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아이디어를 조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기계적 작동장치인 서보(servo) 메커니즘과 계산장비에 대한 관계, 그리고 피드백에 대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대를 나온 사람이면 사이버네틱스의 통신이론에 관한 부분은 신호처리 이론이나 stochastic 이론에서 많이 배웠을 것이다. 제어 이론은 그 당시와 요즘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 이 책에서 나온 컴퓨터 이론은 요즘은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의 무게는 사이버네틱스를 창안한 학자가 메시지의 전달인 통신과 제어를 공학적 범위를 넘어 사회전반으로 확장한 데에 있다. 인문학적 소양이 강한 학자의 목소리가 있었다. 읽다보면 조금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위너의 눈은 편견없이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것, 걱정이 되는 것들을 적고 있었다.
필자가 책을 다시 보면서 발견한 것은 사이버네틱스는 학문이라기보다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 책은 문명론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부분이었다.

‘사이버네틱스’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는 위너가 메시지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정보이론의 클로드 샤논과 함께 연구한 메시지 전달의 전기공학적 의미를 넘어서서 기계와 사회를 제어하는 수단으로서의 메시지 연구, 계산기와 자동화 기계의 심리학과 신경계통의 반사작용들, 확률론적 의미 전달론 같은 것들을 이름 붙이기 위해 단일 용어로 Cybernetics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리스어의 키잡이(steerman)를 의미하는 kubernetes에서 이 단어를 끄집어냈다.
위너에 따르면 어떤 사회는 그 사회에 속하는 메시지와 통신시설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사회는 통신시설이 발전하면서 인간과 기계간의, 기계와 인간간의, 기계와 기계간의 메시지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제어와 통신에 필요한 언어와 기술을 개발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축적한 후에 이러한 아이디어의 의미를 분류하고 연구하는 것이 사이버네틱스의 목적이라고 한다.

정보는 우리가 외계에 적응하고 또 적응한 것을 외계와 교환하는 내용에 붙인 이름이다. … 현대생활이 요구하는 것과 그 생활의 복잡성은 이러한 정보과정에 대한 수요를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만든다. … 효과적으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산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통신과 제어는 사회에서의 인간 생활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부생활의 진수인 것이다.
요즘 보면 너무 당연한 것 같은데 이러한 말은 50여년 전에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기계의 통신이 본질적으로 정보의 교환’이라는 워너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인간활용이라는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사실 목차를 잘 살펴보면 사이버네틱스의 관점에서 생물과 기계, 사람과 사람의 통신(언어와 정치, 법률)을 다뤘다.

Ⅰ. 싸이버네틱스의 역사적 위치
Ⅱ. 발전과 엔트로피
Ⅲ. 고정성과 학습성 : 통신행동의 두 가지 패턴
Ⅳ. 언어의 기구와 역사
V. 메시지로서의 생물체
Ⅵ. 법률과 통신
Ⅶ. 통신, 기밀 그리고 사회정책
Ⅷ. 지식인과 과학자의 역할
Ⅸ. 제1차 및 제2차 산업혁명
Ⅹ. 어떤 종류의 통신기계와 그 장래
XI. 언어, 혼동 및 착란

참으로 엄청난 스케일이다. 아예 이 책을 두고 현대문명의 비판서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자동제어와 피드백을 생물과 기계에서 비교하고, 인간 언어의 시맨틱스(어의)를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이러한 작업들을 사회의 각종 시스템에 맞대어 비교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들 사회의 엔트로피와 주변환경과의 엔트로피를 비교하였다.

사이버네틱스의 화석화
제10장 ‘어떤 종류의 통신기계와 그 장래’는 컴퓨터와 자동제어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여 맹목적이고 탐욕적인 미국 문명 비판으로 끝난다. 위너의 사회학적 견해들은 매우 회의적인 부분이 많았으며 어두운 편이었으나 위너가 보여준 행동은 인간적이었다. 냉전이 시작되고 매카시즘이 판을 칠 때 다음과 같은 발언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대담한 것이었다.

기계에 관해서 이야기했지만 놋쇠로 된 두뇌와 무쇠로 된 근육을 가진 기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인간 원자들이 하나의 조직체로 접합돼 그 속에서 인간으로의 권리를 가진 책임있는 인간으로서가 아니고 톱니바퀴의 지레나 연결봉으로 사용된다면 이들 재료가 살과 피라는 것이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역 내에서 요소로 사용되는 것은 역시 기계의 한 요소와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의 결정을 금속으로 된 기계에 맏기든 또는 관청이나 거대 연구소나 군대나 회사라고 하는 살과 피로 된 기계에 맏기든, 우리가 올바른 것을 묻지 않으면 결코 올바른 대답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 말하자면 하나의 주식회사 전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지니는 마치 마법의 요술과 똑같이 무서운 것이다.

위너 이후에 이러한 규모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천재가 나오지 않은 것이 학문으로서의 사이버네틱스가 화석화된 이유라고 한다. 결국 사이버네틱스는 문화나 철학 정도의 스케일을 갖게 된 것이며, 그 이후에 컴퓨터나 통신에 관한 것이 나오면 사이버-라는 용어를 붙이게 된 것이다. 위너가 들었다면 용어의 사용 폭이 줄어든 것에 대해 섭섭해했을 지도 모른다. 사이버-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된 것은 2차대전 후 프린스턴의 유명한 메이시컨퍼런스에서 비롯됐다. 이 모임에서 무엇인가 발표가 되면 기자와 SF 작가들은 사이버네틱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계와 생물간의 차이점을 두지 않는 이른바 기계적 문명관은 위너 특유의 것은 아니며 컨퍼런스에 같이 참석하던 폰 노이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로부터 컴퓨터의 개발과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가 주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많은 사이트가 있겠지만 미국 사이버네틱스 학회(www. asc-cybernetics.org)와 영국의 사이버네틱스 학회(www.cybsoc.org)를 들러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회에 인용하지는 않았으나 배느바 부쉬에 대한 좋은 자료는 와이어드(www.wired.com /wired/ archive/5.11/es_bush.html)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이버네틱스와 위너에 대한 MIT의 요약은 제롬 와이즈너에 의한 요약(http://ic.media.mit.edu/ JBW/ ARTICLES/WIENER/WIENER1.HTM)이 있다. 와이즈너는 위너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위너에게 배웠다. 나중에 회상하기를 “과학자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새롭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요약했다. 또한 “사이버네틱스라는 이름 하에 신경생리학자·심리학자·언어학자와 통신 기술자들이 모여 새로운 통합적 접근과 수학적 방법을 배웠다”고 적었다(위너보다 먼저 Cybernetics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이 단어를 ‘통치의 기술’이라는 정치 용어로 프랑스 혁명 때 사용했다.

사이버네틱스와 산업문화
사이버네틱스에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부분적으로 대체하면 다음과 같은 조합도 가능하다.

사람이 사람을 프로그램하다.
사람이 사람을 업그레이드하다.
사람에 의한 노예 노동의 대체와 노예의 경제학
사람의 이용
등등 …
위와 같은 기계론적인 사고의 예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성 상실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이버네틱스가 사회에 적용되고 자동화와 컴퓨터의 보급이 일어난 후 기계적 사고와 인간성의 상실이 일어난 곳은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위너의 책에는 경고성 문구가 수도 없이 나온다. 사이버네틱스의 직접적 산업에의 적용은 자동화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자동화는 2차세계대전 후의 미국 노동계를 강타했다. 1945년부터 시작된 수년간의 노동투쟁은 미국에서 사상 유례없이 극렬했다.
인간활용의 9장과 10장은 이러한 문제를 다룬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의 책 『노동의 종말』 중 ‘자동화에 대한 대논쟁’에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기술실업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면서 『인간활용』 해당 부분을 기본자료로 사용했다. 이 책에서 위너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다.

노동수요에서 이러한 변화들이 계획성없이 잘못 조직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실업 중 가장 긴 실업기간에 처하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자동화 기계는 경제적으로 노예 노동자와 같은 것이다. 노예 노동과 경쟁하는 노동이라면 노예노동에 의한 결과 또한 받아 들여야 한다.
자동화 혁명에 의해 황폐해진 첫 번째 사회로는 미국의 흑인 사회가 먼저 거론된다. 남부에서 목화를 따는 기계가 개발되면서 자동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수백만 명의 흑인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리프킨도, 위너도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아무런 교육이나 준비 없이 도시로 흘러 들어왔으며 현재에도 특별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1차 산업의 자동화로서 흑인뿐만 아니라 젊은 농촌 출신들 역시 갈 곳이 없어서 도시로 흘러들었다. 미국의 경우 이제 농업 종사 인구는 4% 정도라고 한다. 1차 산업의 경우는 간단한 자동화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종사자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주관적인 눈에 비친 사이버네틱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후기 포드시대라고 부르는 제2차 산업의 노동력 감소가 있었다. 그 전에 컨베이어에서 사람이 하던 일을 자동화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오펜하이머 보고서는 ‘기술은 일이 아니라 일자리를 없앤다’고 분명히 2차 산업의 인력감소를 경고하였다. NC 또는 자동화 선반같은 것으로부터 출발해 로봇에 이르는 자동화 도구에 의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기기 시작함에 따라 전 미국 자동차 노조에는 비상이 걸렸다. 위너와 그의 동료들은 이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통일된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캠페인에 동참하겠다고 노조위원장인 월터 로더에게 편지를 썼다. 노조 지도자들은 현대판 러다이트로 불리는 것과 진보에 대한 장애물로 남는 것을 두려워 투쟁노선에서 후퇴했다. 그후 일본과의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저스트인타임·린 생산·리엔지니어링 등을 통한 변화가 노동자로부터 중간 관리자, 고급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휘말려 들어갔다.
3차 산업 역시 자동화의 영향을 피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뒤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고치고 매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없애 버려라”라고 주장하는 전직 다국적 기업의 총수가 영웅대접을 받고 자서전이 서점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이러한 일을 적극적으로 추종하는 요즘 분위기에서, 경제 신문들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일은 경쟁력 향상을 저해하는 중죄에 속한다.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후기자본주의 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산의 핵심요소로서의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기계와 같이 살면서 기계와 같이 경쟁하고 그 통신량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극성기에 살고 있다. 우리가 통신하는 모든 메시지는 자본주의에 감염되어 있다. 그 와중에 우리의 무의식마저 획일적인 상업화가 진행중이다. 어떠한 사회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통신수단과 내용의 분석에 있다는 것이 사이버네틱스의 상식이라면 우리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미디어에 대한 무의식들, TV에서 사람들을 홀리는 광고들, 어느 정도씩 계속 저질화가 되는 오락물들, 그리고 여론의 조작과 자본에 충성하는 기사들…)?
이러한 일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제시할 제2의 사이버네틱스같은 새로운 학문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일반인으로 살면서 기대할 수 있는 희망수준의 한계일 것이다. 필자는 독자들이 도서관에 숨어 있는 오래된 『사이버네틱스와 사회』를 찾아서 읽어보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사이버네틱스는 필자의 주관적인 눈에 비친 사이버네틱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사람-기계, 기계-기계, 그리고 기계-사람의 인터페이스에 관한 신선한 철학을 얻었으면 한다. 고전적인 사이버네틱스의 눈으로 새로운 미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이버-라는 이름이 붙은 문화들
무협지의 정파와 사파처럼 어느 시대에나 기성의 문화에 대항하는 하위 문화가 존재했다. 1950년대 이후 사이버-로 시작하는 이름의 SF물들이 많이 출판되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역으로 공통적인 불안감과 불만을 간접적으로 SF를 통해 미래로 투사하는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사이버 문화를 표방했다.
정보기술을 다룬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은 윌리엄 깁슨(1948∼)이 지난 1984년에 펴낸 『뉴로맨서』이다. 뉴로맨서의 무대는 마약과 살인, 인간성 상실과 자아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는 암울한 미래 공간이다. 가상공간(Cyberspac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사이버펑크(Cyberpunk)의 고전이 되었다. 사이버펑크란 말은 본래 디스토피아 소설의 작가, 특히 깁슨을 지칭하기 위해 198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용어라고 한다. 사이버펑크는 컴퓨터로 대표되는 첨단기술과 반체제적인 대중문화의 대등한 융합을 시도하는 데서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대항문화다.
1950년대 미국의 이른바 ‘비트족’들은 아이젠하워 시대의 획일성을 비판하였다. 60년대에는 기성의 사회통념이나 가치체계, 생활양식에 반발한 ‘히피족’들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섹스와 마약, 록큰롤에 탐닉하며 반전운동을 했다. 그들의 진통은 70년대 ‘펑크족’에게로 이어져 기성의 대중문화에 반하는 하위 문화를 형성하면서, 사회가 갖는 타성을 견제하고 보수주의에 맞서 싸우기도 하였다.
미국 대항문화의 기수였던 티모시 리어리(Thimothy Leary) 교수는 60년대 히피들의 LSD(환각제)를 보급시킨 인물로, 과거에는 LSD구루로 알려져 있다. 60년대와 70년대의 미국에서는 상당한 위험 인물이었다.

‘개인용 컴퓨터는 90년대의 환각제’
그가 90년대 사이버컬처 활동가들의 행동 강령을 제시한 유명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개인용 컴퓨터는 90년대의 LSD다(PC is the LSD of the 1990s).” 도대체 컴퓨터가 어떻게 환각과 초탈의 열락, 탈 자아의 황홀경을 고무할 수 있는가? 디지털 데이터의 흐름이 마치 마약처럼 사이버 유저의 신경에 주사될 수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적어도 필자에게 컴퓨터는 일종의 마약이다. 컴퓨터를 쓰다보면 푹 빠져들 뿐만 아니라 통신이 두절되기 때문에 컴퓨터가 없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정말로 큰 박탈감에 빠질 것 같다. 혹시 독자들은 컴퓨터에 중독되지 않았는가? 할아버지가 다 된 왕년의 리어리가 PC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가?
『카오스와 사이버컬처』는 그의 말년 최후의 작품이다. 리어리는 이 사이버펑크의 단계 이후의 존재, 복잡성과 혼돈을 자유 자재로 수용하며 자기 확신과 긍정에 가득 찬 새로운 종류의 존재가 90년대부터 출현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책은 그의 사이트인 www.leary.com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카오스 자체를 일종의 추진력이나 선택의 힘으로 보는 견해는 새로운 것이었다.
20세기 정보공학이 태어나면서 동시에 만들어진 사이버네틱스는 다른 사람이 주석을 붙인 것이 아니다. 바로 정보공학의 탄생이라는 태풍의 눈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철학이다. 이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노버트 위너는 잊혀져도 사이버네틱스라는 단어는 상당기간 동안 문화의 아이콘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이버네틱스라는 이름 하에 돈을 벌거나 지위를 추구하고 사회에 저항하기도 했다. 남을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미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일부는 계속되는 어두운 환상에 시달리면서 살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