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궁극 원자_아누 Anu 글쓴이: 소국향기 ---인용글
보이지 않는 세계
물질의 궁극 원자_아누 Anu┃원초적 질료
justinKIM의탐구생활
원초적 질료
코일론은 물질 그 자체는 아니지만(또는 물질과는 다른 유형이지만) 물질의 바탕이 된다. 나는 그것이 아인슈타인이나 그 밖의 몇몇 사람들이 찾고자 꿈꾸어왔던 통일장(unified field)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공간이 하나의 단일체인 것처럼, 공간의 분화물이자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코일론 역시 하나의 단일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물질을 코일론이라 부르자. 이것은 우리가 소위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코일론은 우리가 속하는 특정한 우주의 총합이다. 즉 우리 태양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태양을 포함하는 광대한 단일체다." (<오컬트화학> 제3판, p.16)
이 단일체라는 개념을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 원자와 분자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 ― 연속적인 물체를 뜻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개념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키온의 예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타키온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입자들과는 달리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초광속 입자이다. 물론 특수상대성 이론이 초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므로, 타키온은 기존의 상대론적인 물질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상의 입자로 취급받고 있다.
보통의 물질 입자는 에너지를 가하면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광속에 접근하게 된다. 따라서 속도가 0일 때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타키온은 아무리 에너지를 가하여도 빛의 속도보다 낮출 수가 없다. 오히려 무한대의 속도일 때 타키온은 가장 안정된 에너지 상태가 되는데, 무한대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한대의 타키온이란 곧 공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코일론을 타키온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정할 때, 코일론-타키온은 분리되어 있는 입자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동일한 존재로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코일론이 하나의 단일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앞 절에서 공기방울을 비유로 설명한 것처럼, 코일론은 물질에 속하는 것이고, 실제적인 물질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물질 또는 물체라고 부르던 것을 계속 물질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한다면, 반대로 코일론을 물질이라고 부르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앞으로 코일론 역시 물질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둘이 비록 서로 다른 유형과 질서에 속하는 것이기는 해도, 이 둘이 함께 빚어져 비로소 물질이라는 조각품을 내어놓는 것이므로 이 둘을 서로 떼어놓기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나아가 코일론은 물질의 재료라고까지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터널의 실체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지만 터널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치형의 기다란 콘크리트 원통인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또 다른 예로 물질을 물결치는 파도에 비유한다면 코일론은 바닷물과 같다. 즉 바닷물이 없다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코일론을 물질(더 정확하게는 질료의 개념)로 간주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코일론조차도 더 높은 질서의 하위 개념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현대과학이 아무리 에테르를 무엇이라고 인식하여도, 에테르는 결국 분화된 질료에 지나지 않는다." (<비교의 물리> p.24)
아누도, 코일론-에테르도 물질의 궁극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존재하게 하였는가? 또는 위의 인용문처럼 에테르가 그 어떤 것으로부터 분화된 질료에 불과하다면, 분화 이전의 그 어떤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어떤 것을 최초의 근원적인 질료라는 의미에서 '원초적 질료(Primordial Substance)'라고 부르기로 하자.
물질(Matter)과 질료(Substance)는 어떻게 다른가?
둘을 확연하게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이 책에서는 물질을 질량이나 관성, 전충성(塡充性; 물체가 공간을 점유하는 성질)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질료는 이런 특성들을 갖지는 않지만 보다 원인적이며 물질을 구성하는 재료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질이 가진 위와 같은 특성은 본래부터 물질에 내재해 있는 본원적인 성질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차차 설명할 것이다), 물질은 질료에 비해 부차적인 것, 또는 질료의 운동이나 결합 같은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일종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런 구분이 항상 유지된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 물질과 질료를 서로 바꾸어 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의식이나 생명과 대비하여 존재의 물질적 측면을 말할 때에는 질료라 하지 않고 물질이라 하기도 하였다.
에테르를 상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과학의 개념이나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원초적 질료를 그려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실 이 이상의 것을 다루는 것은 형이상학 중에서도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우리의 노력은 멈출 수가 없기에 신비학의 지혜에만 의존해서라도 남은 여정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자.
원초적 질료를 신비학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물라프라크리티(Mulaprakriti)라 한다. 물라프라크리티는 문자적으로 천지만물 또는 물질의 뿌리를 의미하며,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모물질(母物質)'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컬트화학의 표현대로 "코일론과 물라프라크리티 사이에는 아주 많은 단계들이 있지만, 현재 그 수를 추정하거나 그 단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모물질이라는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물라프라크리티는 코일론을 포함한 모든 물질과 질료의 모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물라프라크리티는 동서양의 여러 신비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아카샤나 에테르보다도 훨씬 더 상위의 개념이다(코일론조차도 이들보다는 더 상위의 개념이다. 아카샤나 에테르 모두 일반 물질과 코일론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며, 이때의 에테르(aether)는 코일론-에테르와 같지 않다. 에테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단계의 물질 상태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두면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또 오컬트화학과 여러 신비 문헌에서는 물질계의 보다 정묘한 부분, 즉 기체 상태를 넘어서 아원자 수준에 해당되는 물질 상태를 에텔(ether)이라 부르는데, 이것 역시 과학계에서 논의하는 에테르나 위의 에테르와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여행을 통해서 공간과 물질이 사실상 서로 구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보았다. 우리는 보통 우주가 한 점에서 팽창해 나왔다는 빅뱅 이론 등의 영향으로 우주가 창조되면서 비로소 공간이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신비학에서는 공간이야말로 우주의 현현(顯現)과 관계없이 존재하고 있는 우주 이전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간에,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은 무엇이겠는가? …… 그 답은 '공간'이다." (<비교> 1권, p.9)
따라서 공간 자체를 우주의 현현 이전과 현현 이후로 구분하여 볼 수도 있다.
"공간은 그것이 우주활동 전일 때 어머니라고 불리며, 다시 막 깨어나는 단계는 아버지-어머니로 불린다." (<비교> p.84)
물라프라크리티는 그러한 공간의 물질적 측면을 나타내는데, 종종 베일이라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영원한 어버이(공간)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녀의 옷자락에 감추어져 있다.' ... '옷자락'은 분화되지 않은 우주 질료 그 자체를 나타낸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질료가 아니라 질료의 영적 에센스이다. 그리고 공간과 함께 영원히 공존하는 것이며 관념상의 인식에서 공간과 오히려 하나이다. ... 그것은 말하자면 유일하며 무한한 영(One Infinite Spirit)의 영혼이다. 힌두인들은 그것을 물라프라크리티라 부르며, 그것이 원초적 질료라고 말한다. 그것은 물질 현상이든, 심령이나 정신 현상이든 모든 현상의 우파디(Uphadi), 또는 매체(Vehicle)의 토대이다. 그것은 아카샤가 방사되는 근원이다." (<비교> 1권, p.35)
유일하고 무한한 영, 또는 물라프라크리티가 모든 분화된 질료의 근원인 것처럼 모든 분화된 의식의 근원인 형용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을 파라브라만(parabrahman)이라 한다. 물라프라크리티의 개념은 언제나 파라브라만과 함께 나타난다. 물라프라크리티는 파라브라만을 덮고 있는 베일이며, 동시에 파라브라만의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파라브라만과 물라프라크리티는 그 본체는 하나이지만, 현현된 우주의 개념에서 볼 때는 둘이다. 심지어 최초의 '현현'인 하나의 위대한 로고스의 개념 속에서도 둘로 구분된다. 객관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파라브라만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물라프라크리티로서 나타난다. 무제약적이고 절대적인 하나의 위대한 실체로서가 아니라, 그 실체를 가리고 있는 베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비교> 1권 p.294)
불교에서는 파라브라만과 물라프라크리티의 통일적 일자(一者)를 스바바바트(Svabhavat)라고도 한다. 말하자면 파라브라만이 이 통일적 일자의 의식 측면이라면, 물라프라크리티는 물질 또는 공간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파라브라만이라는 용어는 '브라만(Brahman) 너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브라만은 절대자이자 우주 최고의 신성한 영적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브라만을 넘어서 있는 파라브라만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파라브라만은 신이 아니다. 더욱이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인격신(人格神)의 개념을 파라브라만에 적용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파라브라만은 무한의 개념이다. 무한은 절대의 개념조차도 초월한다. 절대자란 우주적인 하이어라키(계층구조)의 수장(首長)을 의미하며, 수식어를 동원하여 형용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정지어지게 된다. 하지만 경계가 없는 파라브라만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시간도 없고, 죽음도 없는 무한 바로 그것이다.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그것을 감히 파라브라만이라고 부를 뿐이다. 파라브라만과 물라프라크리티는 카발라의 아인 소프(Eyn Soph), 또는 동양철학에 등장하는 무극(無極)의 두 측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파라브라만-물라프라크리티는 브라만-프라다나, 그리고 이어서 브라마-프라크리티 또는 푸루샤-프라크리티로 현현되어 나타난다. 프라다나는 근원질료(원초적 질료)의 첫 번째 현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코일론은 이보다도 나중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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